[여의도풍향계] '사법 리스크'에 정국 격랑…씁쓸한 사정정국의 추억

2022-10-23 0

[여의도풍향계] '사법 리스크'에 정국 격랑…씁쓸한 사정정국의 추억

[앵커]

정국이 급격히 얼어붙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겨냥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 하며 파장이 커지고 있는데요.

거센 사정정국의 격랑 속에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도 또 한 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여의도 풍향계에서 최지숙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기자]

서해 공무원 피격, 탈북어민 북송 그리고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

다소 조심스럽게 공방을 주고 받던 사건들이 이제 본격적으로 사정당국의 손에 넘어가며, 정치권의 대립은 정점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검찰은 혐의 입증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과거 정권 교체 때마다 자주 봐왔던 신구 권력 간 전면전의 데자뷔 같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습니다.

민생 현안 점검과 대책 마련에 머리를 맞대야 할 국정감사 기간, 국회는 정쟁의 장으로 변질됐습니다.

특히 이재명의 대표의 '복심',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체포를 계기로 충돌은 극에 달했습니다.

지난 19일, 검찰이 민주당사 내 민주연구원의 첫 압수수색을 시도하며 이를 저지하는 민주당과의 대치는 8시간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은 국정감사 중단을 선언했고,

"국정감사를 전면 중단하고 모든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중앙당사에 집결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야당 탄압의 일환으로 벌어진 작금의 압수수색 쇼에 강력 항의하고…"

당사 앞에 총 집결해 피켓 시위에 나섰습니다.

"윤석열 정권 정치 탄압 규탄한다! 규탄한다! 규탄한다!"

검찰의 칼끝은 사실상 이재명 대표를 정조준 한 상황.

이 대표는 불법 대선자금 수수 의혹과 관련해 "사탕 한 개도 받은 바 없다"며 '대장동 특검'을, 정치적 수세의 돌파구로 제안하고 나섰습니다.

"불법 대선 자금은커녕 사탕 한 개 받은 것이 없습니다. 화천대유 대장동 개발과 관련된 특검을 즉시 수용하십시오."

국민의힘은 특검 수용을 거부하고, "연환계(連環計)를 풀지 않으면 민주당은 이 대표와 함께 침몰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제대로 된 한 방 없이 고성과 막말로 점철됐던 윤석열 정부 첫 국정감사는, 사정정국 앞에 그마저 멈춰섰습니다.

특히 검찰과 법원 등의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파행을 거듭했습니다.

지난 20일 대검찰청 국정감사는 검찰 수사에 대한 민주당 의원들의 거센 항의와 여당 의원들의 고성으로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보복수사 중단하라! 야당탄압 중단하라! 김건희도 수사하라!"

'죄를 짓지 말라'는 김도읍 위원장의 발언을 놓고도 설전을 벌이다가, 개의 30분 만에 감사가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그럼 죄를 짓지 말든지! 죄를 지었다고 하니까 영장이 나오는 거 아니에요!"

다른 상임위 곳곳도 검찰 수사를 둘러싼 충돌이 이어지며, 국감장의 정책 대결은 사라졌습니다.

사정정국의 전개가 어딘가 익숙한 이유는, 역대 정권마다 되풀이 돼 온 광경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어김없이 전 정부의 비리를 겨냥한 전방위 수사가 시작되곤 했고, 생존 투쟁의 소용돌이에서 '정치'는 밀려났습니다.

'역사 바로 세우기'를 내건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5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전격 구속하고 나란히 법정에 세웠습니다.

MB정부에선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를 고리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한 검찰 수사가 벌어졌는데, 수사 도중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는 비극이 빚어지며 임채진 검찰총장이 옷을 벗었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에 '적폐 청산'을 전면에 내걸었고,

"진정한 통합은 적폐를 덮고 가는 봉합이 아닙니다. 적폐를 확실히 청산하면서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집권 후 대대적인 전 정권 수사를 진행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뇌물과 횡령 혐의로 각각 구속 수감돼 재판을 받았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전 정권 수사는 공존을 용납치 않았습니다.

내세운 명분은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어느 한 쪽의 완전한 패배를 확인한 뒤에야 전쟁은 끝이 났기 때문에 또 다른 불씨를 남겼습니다.

권력 대립의 최일선에서 칼자루를 쥐는 검찰의 중립성과 수사 독립성 문제는 정치권의 오랜 의제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검찰 개혁에 본격적으로 손을 댄 것은 참여 정부.

그러나 반발은 거셌고, 2003년 '검사와의 대화'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불편한 심기를 표현한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지요'가 한동안 유행어처럼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권력은 검찰을 이용하면서도, 한편으로 두려워했습니다.

이후에도 대검 중수부 폐지,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의 힘을 빼기 위한 시도가 이어졌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조국 전 장관 수사를 계기로 대대적 간부 인사를 단행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결과적으로는 최초의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탄생으로 귀결됐습니다.

검찰 내부에서도 권력의 그림자를 벗어나야 한다는 우려가 불거지지만, 악어와 악어새 같은 권력과 검찰이 서로의 손을 놓는 날은 아직 멀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사정 정국과 방탄 국회. 민생현장의 어려움과 무관한, '아귀다툼'을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이 편치만은 않아 보입니다.

정치학자 야스차 뭉크는 저서 '위험한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의 기제 중 하나로 '적'과 '적수'를 구별하라고 제안했습니다.

우리 국어 사전도 '적'의 첫번째 정의는 '싸우거나 해치고자 하는 상대'인 반면, '적수'는 '재주나 힘이 비슷해 상대가 되는 사람'으로 정의했습니다.

여야 모두 상대를 적이 아닌 '적수'로 놓고 벌이는 선의의 경쟁이, 정쟁에 지친 민심을 붙잡을 길이 아닌지 생각해 볼 때입니다.

지금까지 여의도 풍향계였습니다.

#사정정국 #여야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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